오승환이 진출한 메이저리그에 왜? 선동렬은 진출하지 못했을까?

Posted by happydaniel70
2016. 5. 20. 23:01 스포츠::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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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루 입니다. 요즘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을 보느라고 새벽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일 터지는 홈런 소식과 끝판왕 오승완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같은 한국인 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빅리그에서도 유감 없이 실력을 발휘 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에 험한 세상을 살아 가는 용기도 얻고 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 지는 것이 돌부처 오승환 선수의 경기를 보다 보면 원조 끝판왕 이라고 할 수 있는 선동렬 선수가 떠 오릅니다. 지금은 선동렬 감독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여전히 선동렬 선수는 선수라고 불러줘야 웬지 예우에 맞는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선동렬 선수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누구 맘대로? 물론 제 맘대로 입니다. 언제나 선동렬 선수는 선수 시절 이었을 때가 가장 멋진 전성기 였으니까요..^^


어쩌면 오승환 이라는 역대급 끝판왕을 배출해 낸것도 역시 선동렬 선수가 삼성 감독 시절에 일구워낸 역사 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요. 지금쯤 오승환 선수의 활약을 보면서 선동렬 선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 내는 후배 혹은 제자들을 보면서 가슴 뿌듯해 하고 있을까요? 그 시절 본인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을 해서 빅리그의 세계 최고 타자들과 겨루어 보지 못한것이 한스러울까요?


그런데 정말 선동렬 선수는 그 당시에 왜?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 했을까요? 아니, 엄밀히 말해서 실패 라고 하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시도할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절대로 실력이 모자라서 메이저 리그 진출을 생각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선동렬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와 관련 되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시에 가장 큰 걸림돌 이었던 것은 역시 병역 문제 였습니다. 지금이야 그 정도의 실력이 있고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어떡 해서든지 방법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서 병역 특혜를 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기 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는 사실 입니다. 특히, 고향인 전라도와 광주의 선동렬 사랑은 남다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국민적 사랑이 메이저 리그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 하실수 있는데 사실 선동렬을 결정적으로 발목 잡았던 것이 지나친 사랑과 함께 당시의 이상한 애국심 입니다..^^;


선동렬은 당시에 진로 문제를 두고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고려대를 다니던 선동렬에게 프로 데뷔와 해외진출 심지어 대학원 까지도 고민을 해야 하는 입장 이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주목받는 유망주 였던 선동렬에게는 너무나 많은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아시는것 처럼 선동렬은 해태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게 되고 향후 해태 타이거즈의 붉은 상의와 검은 하의 유니폼을 입고 무등산 폭격기의 신화를 써 내려 가게 됩니다.


이때, 선동렬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시킨 결정적 요인이 바로 광주 시민의 선동렬 사랑 이였는데 선동렬의 부모님과 선동렬 본인 자신이 증언 하듯이 선동렬의 부몬님들 께서 선동렬에게 말씀 하시기를 "어찌 되었든 사람이 살아야 하지 않겠나, 니가 해태 타이거즈에 가지 않으면 우리가 못살아 남겄다.." 라고 이야기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광주에서 여관업을 하시던 선동렬의 부모님엑 광주 시민은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를 시도 했는데 결국 선동렬은 이런 광주 시민들의 사랑에 백기를 들고 해태 타이거즈로 입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전성기가 왔을때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계자들은 선동렬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타진 하기 시작 합니다. 또, 당시의 선동렬을 기억하는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그 당시의 선동렬 선수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슬라이더와 볼끝이 칼 같은 제구력을 보이는 패스트볼은 메이저 리그라고 하더라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병역 문제라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선동렬을 잡고 있는 문제는 역시 국내 팬들의 지나친 사랑 입니다. 당시에는 마치 국보급 선수가 해외로 빠져 나가면 나라를 배신한 듯한 느낌을 받았던 때라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특히 전성기 시절의 선동렬 선수는 이미 해태를 지키는 수호신 이어서 해태를 떠난 다는 것은 상상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선동렬과 비슷한 사례는 축구계의 전설인 차범근 감독의 경우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그가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할 무렵 국내에서는 그의 독일행을 막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실제 독일로 떠나 버지자 온 국민들이 그를 배신자로 몰아 붙이며 울고 불고 했었던 일이 있습니다.


결국, 선동렬은 전성기가 한찬 지나고 오랜 부상으로 고생을 한후에 마무리 투수로 돌아 와서 오랜 숙원이었던 해외진출의 꿈을 나고야에 진출해서 나고야의 태양(SUN) 으로 우뚝 섬으로써 이룰 수 있었지만 그렇게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찬반 투표를 거친 후에야 겨우 해태를 떠나서 또 대한민국을 떠나서 활약을 할 수 있었으니 전성기 시절은 미루어 짐작할 부분 입니다.


지금도 궁금 합니다. 이렇게 과도한 사랑을 받았던 선동렬 선수는 그 시절의 이렇게 지나친 팬들의 사랑에 감사할까요? 아니면 고맙고 감사한 마음 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빅 리그 진출을 하지 못한 자신에게 미련이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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